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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어원, 역사

깜 냥 2024. 3. 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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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饅頭)는 밀가루 등을 반죽하여 얇게 민 만두피에 채소와 고기 등의 소를 넣어 빚은 중국과 일본 및 동아시아권 나라들의 요리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리할 수 있다.

중국 본토에서는 딤섬, 자오쯔, 샤오롱바오 등등 수백 개의 만두 종류가 있으며 중화권의 가장 대표적인 요리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한반도 내 지역마다 여러 가지 만두가 있다. 현재 중국의 대표 음식이자 과거 궁중 요리 중 하나이기도 했으나, 이제 슈퍼마켓이나 음식점, 분식집, 포장마차에서, 또는 길거리 음식으로 흔히 볼 수 있다.

어원
한국어 "만두(饅頭)"는 바시키르어·키르기스어·타타르어 "만트(манты)", 아르메니아어 "만티(մանթի)", 아제르바이잔어·티르키예어 "만트(mantı)", 우즈베크어 "만트(manti)", 위구르어 "만타(مانتا)", 카자흐어 "만티(мәнті)", 타지크어 "만투(манту)", 파슈토어 "만투(منتو)" 등 비단길을 따라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의 여러 비슷한 음식과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중국어 "만터우(馒头; 饅頭)" 또한 어원이 같으며, 과거에는 한국어 만두와 마찬가지로 소를 넣어 빚은 음식을 뜻했으나, 지금의 만터우는 중국의 자오쯔나 딤섬, 샤오롱바오 등의 얇은 피가 아닌 소를 채우지 않고 찌거나 구운 찐빵과 비슷한 음식을 뜻한다.

역사
역사적으로 밀을 가장 먼저 재배했던 지역은 기원전 90세기 경 아나톨리아 반도이며, 기원전 30세기 경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 대량 재배 한 것으로 추정된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밀가루를 물과 반죽한 뒤 뜨거운 돌 위에 넓게 펴서 '닌다'라는 이름의 빵을 만들어 먹었다.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요리책에서 '푀겔헨'이라는 요리가 발견 되는데, 이는 닌다 위에 다진 고기를 얹고, 다시 닌다를 얹은 후 익혀 먹는 음식이다. 현재 만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조리법이다.

기원전 550년에 메소포타미아 문명 자리에 번성했던 페르시아 제국은 사각형으로 만든 무발효 밀반죽 위에 다진 고기와 양념을 속을 채워 먹는 요리인 '요시파라'라는 요리를 먹었다. 이 요시파라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퍼져 시시 봐라, 추츠바라, 두시 봐라, 최희라 등 다양한 만두 조리법의 어원이 된다. 당시 페르시아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한나라와 교역하고 있었고, 실크로드를 따라 만두가 중국으로 전래된다. 그 과정에서 물이 부족한 중앙아시아, 중동 지역에서는 화덕에 굽거나 튀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중국인들은 이 음식을 '이민족의 밀가루 음식'이란 뜻의 후빙(胡餠)이라고 불렀다. 이 후빙은 시간이 지나며 중원의 음식으로 정착, 중국 문화와 융합을 이루어 현재의 지엔빙(煎餅, 전병), 웨빙(月饼, 월병)이 되었다. 후빙은 중앙아시아의 굽는 방식에서 벗어서 물이 풍부한 중국 문화권의 삶고 찌는 조리법과 결합하게 된다. 찌는 방식은 만터우(饅頭)며, 삶는 방식은 탕빙(湯餅)이라 하였으나, 탕핑은 수제비, 만둣국 등 다양하게 추정될 뿐 정확한 조리법이 밝혀지지 않았다.

또 하나는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승상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남만(南蠻·지금의 미얀마 부근)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수(濾水)의 풍랑이 심하여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부하 하나가 남만의 풍속에 따라 사람 목을 베어 머리를 수신(水神)에게 바칠 것을 권했다. 공명은 적지일지라도 더 이상 사람의 목숨을 해칠 수는 없다며 밀가루 반죽에 양과 돼지고기를 넣어 사람의 머리처럼 빚어서 바쳤다.>

만두가 남만인의 머리를 뜻하는 ‘만두(蠻頭)에서 유래했다는 설인데, 일부 전문가들은 에피소드 자체가 정사(正史)에는 나오지 않는 허구(虛構)라서 역사적 근거가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전인 후한(後漢) 시대에 최식(崔寔)이 지은 《사민월령(四民月令)》에 이미 만두라 할 만한 음식이 등장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반도에는 14세기에 원나라를 통해 소개되었다고 여겨지거나,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중동에서 비단길을 통해 들어왔다고 보기도 한다.

만두와 유사한 요리는 전세계적으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각 나라별로 다양한 요리법을 가지고 있다. 밀가루 음식이 옛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출발하면서 만두 유사한 요리가 등장하였고, 이것이 동쪽의 아시아를 거쳐서 다시 유럽으로 퍼졌다는 설이 있다.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그의 논문 ‘만두 문화의 역사적 고찰’을 통해 “국수의 기원이 실크로드를 통한 밀가루의 전래에 있듯 만두 역시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왔다는 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만두와 유사한 요리가 발견되고 있으며, 만띄, 만트, 만터우, 만두 등 명칭과 형태가 닮아 있다는 점도 있다. 단, 일반적으로 중앙아시아의 만두 요리는 한국을 정복한 몽골 제국에 의해 전파되었다고 여겨진다. 사실 의외로 과거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만두와 유사한 요리는 세계적으로 찾기 어려웠고 거의 대부분 나라의 기록에도 상당히 늦게 등장한다.

한국에서 언제부터 만두를 먹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의견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고려시대 후반 이후부터로 보고 있다. 고려사 충혜왕조에 내주(內廚)에 들어가서 만두를 훔쳐먹는 자를 처벌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훈몽자회’, ‘동국세시기’ 등에서는 만두를 상화라고 하여 “상화는 그 모양과 성질이 한국인의 기호에 맞는 관계로 한국 사신이 오면 그들을 접대하는 데 썼다”고 했다. 고려 가요인 〈쌍화점〉에 나오는 상화도 이것을 가리키는데 가루에 술을 넣어 부풀린 반죽을 찐 것을 말한다.